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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시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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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정부와 벨포르의 봄 === 임시정부는 10월 27일 비상계엄을 해제하고 정치범을 석방했으며, 언론 사전 검열을 폐지하고 정당 활동을 재개시켰다. 군정기의 공식 명칭이던 「10.10 구국거사」도 이때 폐기되었다. 혁명 직후부터 제4공화국 출범까지 이어진 이 해빙 국면을 [[벨포르의 봄]]이라 부른다. 가을에 시작된 국면이 '봄'으로 불린 것은 계절이 아니라 해빙을 뜻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행기의 주도권은 혁명을 이끈 시민위원회가 아니라 [[리처드 앨런 베인브리지]]의 [[민주연합(루이나)|민주연합]]에 돌아갔다. 베인브리지는 혁명 기간 내내 거리 투쟁과 거리를 두었다. 10월 10일 이후 민주연합이 낸 성명은 "질서 있는 민정 이양"을 촉구하는 데 그쳤고, 24일 총봉기에는 "무장은 또 다른 독재를 부른다"며 반대했다. 그가 혁명 지지를 공식 선언한 것은 공군의 폭격 거부와 미합중제국의 경고가 알려진 25일 밤이었다. 그러나 혁명이 끝나자 상황은 달라졌다. 시민위원회와 임시시민의회는 거리의 권위는 있었으나 전국 조직이 없었고, 군정 아래에서 등록 절차를 거쳐 지부망을 갖춘 정당은 사실상 민주연합뿐이었다. 베인브리지는 군정 잔재 청산과 치안 재건을 내걸고 이행기 정국을 주도했으며, 그해 말 헌정이 회복되면서 제25대 대통령에 취임해 [[제4공화국(루이나)|제4공화국]]을 출범시켰다. 혁명의 과실을 혁명에 가장 늦게 합류한 사람이 거둔 셈이었다. 헌정 회복 직후에는 군정기의 폭력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조치들이 이어졌다. 군정기의 철거와 강제퇴거에 대한 반성에서 [[주거권 보장법 (루이나)|주거권보장법]]이 제정되었고, 정보기관에 대한 의회 정보위원회의 감독과 정보감찰관 제도가 도입되었다. 1981년에는 해산되었던 학생회가 부활하고 해직 교원이 복직했으며, [[정보기관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군정기와 그 이전의 정보기관 활동을 조사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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